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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상품성 없는 잎은 떼고"…'배추 생산량조사' 이렇게 이뤄진다

이형일 통계청장 충남 예산 봄배추 재배현장 동행취재
1·3·5·7·8·10번째 표본 배추 수확…10a당 생산량 도출

[편집자주]

이형일 통계청장이 25일 충남 예산 한 봄배추 재배현장에서 생산량조사 시연회를 위해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24.04.25. © 뉴스1 손승환 기자
이형일 통계청장이 25일 충남 예산 한 봄배추 재배현장에서 생산량조사 시연회를 위해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24.04.25. © 뉴스1 손승환 기자

"표본을 미리 정하지 않으면 사람 심리가 본능적으로 큰 걸 뽑게 돼 있어요." (통계청 조사원)

지난 25일 오전 11시께 충남 예산의 한 봄배추 재배현장. 이형일 통계청장 및 통계청 관계자와 함께 올해 봄배추 생산량 조사 시연회를 위해 전국 전체 생산량의 40%가 있는 이곳을 찾았다. 봄배추 출하는 통상 4월 말에서 5월 초 이뤄진다. 올해는 예년보다 따뜻한 날씨의 영향으로 시기가 앞당겨졌다.

봄배추 생산량 조사는 통계청이 공표하는 공식 통계는 아니다. 그러나 배추 생산량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큰 탓에 농림축산식품부나 한국은행 등 관계 당국의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경작자에게 질문을 해 출하량을 조사하는 농촌경제연구원과 달리, 표본이 되는 필지를 추출하는 것이 통계청 조사의 특징이다.

이날도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표본 선정 작업이 진행됐다. 표본을 뽑는 과정은 생각 이상으로 복잡했다. 통계청은 매년 봄배추 생산량 조사를 위해 해당 작물 전체 면적이 33㎡(10평) 이상 재배되고 있는 필지를 선정한다. 표본으로 추출된 필지는 현장 답사를 통해 3㎡(1평) 크기의 2개 표본 구역(A, B)으로 최종 선정된다.

실제 조사는 A, B 두 구역에서 각각 배추 6포기를 수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해당 구역 안에 있다고 해서 아무 배추나 뽑아도 되는 것도 아니었다.

A 구역으로 선정된 이랑에는 총 11포기의 배추가 있었다. 통상 한 구역에는 10~13포기의 배추가 생산된다. 이 가운데 통계청이 제시한 난수(특정한 순서나 규칙을 가지지 않는 임의의 수)를 적용해 표본이 된 배추는 1·3·5·7·8·10번째였다. 같은 A 구역 안에 있더라도 2·4·6·9·11번째 배추는 이번엔 표본으로선 자격이 없었다.

이형일 통계청장이 25일 충남 예산 한 봄배추 재배현장에서 시연회를 선보이고 있다. (통계청 제공)
이형일 통계청장이 25일 충남 예산 한 봄배추 재배현장에서 시연회를 선보이고 있다. (통계청 제공)

통계청은 조사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이처럼 까다로운 방식으로 표본을 선정한다고 설명했다. 봄배추 생산량 조사가 발표되면 시장 수요와 공급에 바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임의로 표본 배추를 선정하면 조사원 개인의 선택이 반영돼 조사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단 우려도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예컨대 올해 수확량이 평년보다 좋다는 결과가 나오면 공급이 많다는 의미인 만큼 배추 가격이 떨어진다"며 "이 경우 일부러 조사를 조작한 게 아니냐고 항의하는 농민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 청장도 녹색 민방위복과 고무장화, 토시, 장갑 차림으로 직접 봄배추 수확에 나섰다. 이 청장은 뿌리 끝까지 완전히 젖힌 후 칼로 밑단을 잘라야 한다는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직접 배추를 수확했다. 그러면서 "배추마다 무게가 정말 다 다르다. 올해 작황이 좋아서 배추 가격이 안정되길 바란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수확된 구역별 6포기의 배추는 3포기씩 저울에 올랐다. 각각의 무게는 7.93㎏, 8.75㎏. B구역에서 수확된 배추는 9.33㎏, 7.33㎏이었다. 같은 배추 3포기지만 속이 얼마나 찼는지에 따라 중량에 차이가 있었다. 현장 관계자는 "정확도를 위해 상품성이 없는 바깥쪽 배춧잎 1~2장은 떼어내고 무게를 잰다"고 말했다.

무게 측정까지 끝나면 마지막 단계는 조사표 작성이다. 봄배추 생산량 조사는 표본 조사를 통해 10아르(a)당 생산량을 도출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A 구역을 예로 들어 보면, 3㎡당 포기 수인 11포기에 포기당 평균 중량인 2.78㎏을 곱한다. 이어 이를 3으로 나눠 1㎡당 생산량을 구한다. 여기에 1000을 곱하면 10a당 생산량이 최종적으로 도출되는 셈이다.

통계청은 올해까진 조사원이 수기로 작성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지만, 내년부턴 태블릿PC를 활용할 계획이다. 태블릿PC에 조사용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한 뒤 표본구역과 재료, 채취 간격 등을 자동 계산하도록 해 조사의 정합성을 더욱 높인단 방침이다.

25일 충남 예산에 있는 한 봄배추 재배현장의 모습. (통계청 제공)
25일 충남 예산에 있는 한 봄배추 재배현장의 모습. (통계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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