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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잘하세요…'자율'에 맡긴 밸류업, '당근'이 없다

'5월 자율 공시 시작'에도…상장사들도 '심드렁'
"강제성도 혜택도 없으면 누가 총대 메겠냐"

[편집자주]

(금융위원회 제공) 2024.5.2/뉴스1
(금융위원회 제공) 2024.5.2/뉴스1

"의도가 좋은 거는 다들 알죠. 그런데 강제성도 없고 인센티브도 없는 상황에서 어느 기업이 총대를 메고 시작하려고 할까요?"(자산운용업계 관계자)

정부와 한국거래소가 지난 2일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밸류업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부담을 토로하는 기업의 눈치를 보며 '자율성'을 강조했다. 이에 반해 투자자와 기업들이 바라던 세제 혜택 관련 내용 등 '인센티브'는 이번에도 빠졌다.

강제성도, 유인책도 없는 밸류업 정책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도 저도 아닌 '반쪽짜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이드라인 공개 앞당긴 거래소…시장 관심 쏠린 세제혜택은 또 빠져

당초 밸류업 가이드라인 공개는 오는 6월 예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한국거래소는 지난 3월 밸류업 가이드라인 공개를 5월로 1달 당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은 "시장의 관심과 기대가 큰 만큼 가이드라인 제정 작업에 속도를 높여 상반기 안에 최종안을 확정하기로 한 계획을 더 앞당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당겨 공개된 가이드라인에는 기업들의 참여 유인책인 세제혜택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이날 발표된 혜택은 이미 지난 2월과 4월에 공개된 '3대 분야 8종 인센티브'뿐이었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기업 부담 신경 쓰느라 자율성만 강조할 거였으면 유인책이 될 만한 내용이라도 공개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시장에서 가장 관심이 큰 세제 혜택 내용도 없이 공개 시점을 앞당기겠다고 한 의도를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발표 후 외국인·기관 매수 심리 약화…5월 자율 공시 시작에도 상장사 '관심 無'

실제로 가이드라인 발표 후 시장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이날 KRX 은행 지수는 2.51% 하락 마감했다. 저 주가순자산비율(PBR) 수혜주로 꼽히는 종목으로 구성된 KRX증권, KRX보험, KRX자동차 지수도 각각 2.10%, 2.84%, 0.28% 하락해 장을 마쳤다.

이날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순매수도 고작 22억 원에 그쳤다. 지난 26일부터 3거래일간 일평균 3513억 원을 순매수하던 것에 비해 매수세가 약화된 모습이다. 역시 3거래일 연속으로 순매수에 나서던 기관 투자자는 지난 2일 1418억 원을 순매도하며 매도세로 돌아섰다.

간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제롬 파월 의장이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선을 그었음에도, 외국인과 기관의 투자심리는 오히려 후퇴했다.

상장사들 역시 당장 이달부터 밸류업 공시가 시작되지만, 강제성도 인센티브도 없는 가이드라인 발표에 큰 관심이 없는 모습이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아직 금융위원회에서도 다 결정된 게 아니라고 하고 있고 5~6월 중 기업 의견 수렴, 공시 교육도 진행한다고 하니, 그때쯤에 기업들의 관심도 커지지 않을까 한다"고 설명했다.

코스피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를 반영하며 약보합 마감한 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 종가와 비교해 8.41포인트(p)(0.31%) 하락한 2683.65, 코스닥은 전날 대비 1.45p(0.17%) 하락한 867.48로 마감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6.1원 내린 1375.9원을 기록했다. 2024.5.2/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코스피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를 반영하며 약보합 마감한 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 종가와 비교해 8.41포인트(p)(0.31%) 하락한 2683.65, 코스닥은 전날 대비 1.45p(0.17%) 하락한 867.48로 마감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6.1원 내린 1375.9원을 기록했다. 2024.5.2/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증권가 "시장 실망 뚜렷…방향성은 유효하니 더 지켜봐야"

증권가에서는 시장의 실망을 지적하면서도, 방향성은 유효한 만큼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2차 세미나를 매도 재료로 인식했다"며 "외국인은 실적 전망이 좋은 상사·자본재, 자동차를 제외한 은행, 증권, 보험, 통신, 유틸리티를 소규모 순매도했고, 기관은 증권을 제외하면 밸류업 관련 전업종을 순매도했다"고 설명했다.

노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기업에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인센티브 법안 제정으로 밸류업 프로그램 달성의 실마리를 찾고 싶어한다"면서도 "법인세 부담 완화, 배당소득 분리과세 방침에 대해 정부는 구체적 검토를 마무리하고 세제 방안도 발표하겠다고 밝혀 방침은 바뀌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김지현 키움증권 연구원은 "2차 세미나의 시사점은 공시 의무화, 페널티보다는 인센티브 제공을 통한 자율적 참여 장려 기조를 재확인했다는 점"이라며 "핵심이 되는 주주환원 증가액에 대한 법인세 부담 완화,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세제 혜택 내용은 또다시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기업 지배구조 개선 측면에서, 세제부분 제외 상법 개정 및 스튜어드십코드 개정은 예정대로 추진 가능하며 소액주주 증시 참여 확대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며 "외국인 순매수 유입이 지속됐고 밸류에이션 부담이 없기 때문에 5월 중 자율공시 시작 및 참여 기업 확인 이후 반등 여력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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