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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혁명을 주도하고 이란 영적 지도자로 군림한 시아파의 거두 [역사&오늘]

6월 3일, 이란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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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출처: Unknown author, www.irdc.ir, 흑백사진(2013),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출처: Unknown author, www.irdc.ir, 흑백사진(2013),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1989년 6월 3일, 이란의 정치·종교 지도자 세예드 루홀라 무사비 호메이니가 사망했다. 이란의 시아파 성직자이자 정치 지도자로서 1979년 이란 혁명을 이끌고 이란이슬람공화국의 최초이자 유일한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라 죽을 때까지 군림했던 인물이다.

호메이니는 1902년 9월 24일 이란 호메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종교와 학문에 뛰어났으며, 1920년대에 이미 젊은 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곧 시아파 이슬람 법학의 주요 학자로 자리매김했으며, 그의 강연과 저술은 점점 더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됐다.

1960년대에 이란 내 시아파 종교 공동체의 최고 지도자가 된 호메이니는 이란 국왕 무하마드 레자 샤 팔라비의 서구화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1963년 그는 곧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1964년에 석방됐다. 하지만 미국을 비난하다가 다시 체포된 후 튀르키예로 강제 추방됐고, 1978년에는 이라크로 거처를 옮겼다.

망명 생활 중 호메이니는 '벨레야테 파키'(이슬람 법학자의 후견권)를 집필해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강조하고 이슬람 국가는 공화국이어야 한다는 사상을 설파했다. 그의 연설과 메시지는 카세트 테이프와 전단지를 통해 이란으로 밀반입되어 팔레비 정권에 대한 대중적인 불만을 더욱 키웠다.

1979년 1월 이란에서 혁명이 발생해 팔라비 국왕이 국외로 도피한 후 호메이니는 귀국해 이란이슬람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는 최고지도자가 되어 헌법을 초안하고 정부 구성을 주도했다. 또한,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을 총지휘했다.

호메이니는 율법에 엄격했고, 권위주의적인 통치와 인권 침해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슬람교 율법주의의 강화로 인해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크게 제한되기도 했다. 또한, 시간이 갈수록 그에 대한 지지는 그에 대한 개인숭배로 변질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이란 국민의 지지와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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