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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전쟁의 판세를 뒤집은 전투 [역사&오늘]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의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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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해전. (출처: Official U.S. Navy Photograph work, 흑백사진(1942),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미드웨이 해전. (출처: Official U.S. Navy Photograph work, 흑백사진(1942),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1942년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이 시작됐다. 7일까지 사흘간 계속된 이 해전에서 미국은 일본 함대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겼고, 태평양전쟁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계기를 마련했다.

1941년 12월 7일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일본은 미드웨이섬을 점령하고 하와이 제도를 공격해 태평양 전체를 장악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미드웨이섬은 하와이와 일본 본토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이곳을 점령하면 일본은 태평양 중부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복수심에 칼을 갈고 있던 미국은 일본 해군의 무선 통신을 해독하고 일본의 미드웨이 공격 계획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 미군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미드웨이섬에 병력을 증강하고 반격 계획을 세웠다.

일본 함대의 공격에 미국은 즉각 반격에 나서 대승을 거뒀다. 일본은 항공모함 4척(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이 침몰됐고, 중순양함 1척 격침과 경순양함 2척 손상의 피해를 입었으며, 구축함도 3척이 침몰하고 2척이 손상됐다. 항공기 또한 약 250대가 격추되거나 파괴됐다. 사상자는 사망자가 약 3000명, 부상자가 약 1000명에 달했다. 반면에 미군 측 피해는 항공모함 1척(요크타운) 침몰, 경항공모함 1척 손상, 구축함 1척 침몰과 3척 손상, 항공기 약 150대 격추 또는 파괴, 사망자 약 300명과 부상자 약 1000명이었다.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 함대에 치명타를 입혔고, 일본은 더 이상 태평양에서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없게 됐다. 만신창이가 된 일본 함대는 6월 15일 일본 히로시마로 귀환했다. 

미드웨이 해전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 정보, 지도력, 기술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오늘날에도 미드웨이 해전에서 얻은 교훈은 전략, 군사, 국가 운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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