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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으로 가족 꾸린 억척 엄마 실종…물탱크 속 시신으로

경찰 현금 빼간 CCTV속 인물 수사 않고 '외도' 치부[사건속 오늘]
알리바이 확실한 장애 남편만 의심…가족 재수사 요청도 흐지부지

[편집자주]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2002년 6월 월드컵 4강 신화가 이루어진 대한민국, 모두가 하나가 돼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그 순간. 한 단란한 가정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치러진 폴란드전을 승리로 장식한 다음날인 6월 5일 청주의 한 빌라에서 가정주부 강 모 씨(43)가 실종됐다.

◇ 하교 후 빈집에서 수상한 흔적 발견한 첫째 아들…불길한 예감

당일 오후 5시. 충북 청주시 흥덕구(현 서원구) 수곡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거주하는 고교 1학년인 송 모 군(17)은 평소처럼 수업을 마치고 귀가했다.

활짝 열려 있는 현관 앞에서 송 군은 어머니를 불렀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현관을 들어서 집안에 들어선 송 군 앞에는 너무도 낯설고 불길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거실과 집 안 곳곳이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집에 있어야 할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고, 집 안에 있던 붙박이장과 물건들은 바닥에 나뒹굴며, 전화선까지 모두 뽑혀있었다.

또 세탁기에 미처 돌리지 못한 빨랫감이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는 평소 꼼꼼하고 깔끔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이런 모습은 송 군에게는 무척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게다가 부엌에는 저녁 준비를 하다만 흔적까지 있어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급하게 외출한 것이라 생각하며, 잠시 후 귀가한 중학교 3학년인 여동생(16)과 함께 엄마를 기다렸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있다는 불안한 마음에 남매는 밤새도록 엄마를 기다렸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올 수 없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 실종 신고 받은 경찰, 수사 의지 없어…단순 가출로 치부

이튿날인 6일 가족들은 강 씨의 행방에 대해 경찰에 신고했다.

실종된 강 씨는 몸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지난 5년 동안 헌신적으로 가족들을 돌봤다.

단 한 번도 연락 없이 집을 비운 적이 없었다. 가족들은 실종 직후 범죄임을 직감했지만, 신고를 받은 경찰의 태도는 무관심 그 자체였다.

어수선했던 집 내부도 잘 살펴보지 않고 그저 "접수하겠다"라고만 하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가족들은 실종 수사를 재차 요청했지만 경찰은 단순 가출로 결론지었다.

결국 경찰의 무성의한 태도에 가족들이 직접 나서게 됐다. 가족들은 살고 있던 빌라 지하부터 3층까지 인근 지역 등을 샅샅이 뒤졌지만 엄마의 흔적은 없었다.

남편은 아내가 범죄에 연루돼 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경찰의 태도에 답답했던 그는 통장 내용을 확인하는데, 정확히 아내가 사라진 5일 오후 5시 22분에 현금카드에서 돈이 빠져나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확인해 보니 강 씨의 집에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은행이었다. 그로부터 10분 후인 5시 33분에 버스터미널 현금지급기에서 또 한차례 현금이 인출됐고 또 이틀 후 여러 차례 현금이 인출된 흔적이 남아있었다.

당시 최대 인출 금액인 70여만 원씩 수차례, 그렇게 빠져나간 액수는 총 1000만 원이었다. 실종된 아내는 평소 작은 돈도 허투루 쓰지 않는 알뜰한 사람이었다. 또 통장에 있던 돈은 남편이 교통사고 당시 받은 금액으로 강 씨는 이를 살뜰하게 모아놓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가 절대 손대지 않는 돈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다시 한번 범행을 확신한다.

하지만 남편의 설명에도 경찰은 단순 가출로 단정했다. 경찰에게서 되돌아온 답변은 "바람나서 집 나가는 여자들이 요즘은 많으니, 기다려 보라"는 어처구니없는 얘기였다.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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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한 현장 모두 무시한 경찰…결정적 증거도 무시

결국 다시 한번 가족들은 강 씨를 찾아 나섰고, 얼마 뒤 결정적인 증거를 경찰이 아닌 그들 스스로 찾아내게 된다.

가족들이 집 근처 은행을 찾아가 관계자에게 사정해 실종 당일인 5일 오후 20~30대로 보이는 남성 A 씨가 은행에서 강 씨의 카드로 현금을 인출한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확보한 것. 가족들은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으나 반응은 역시나 냉담했다.

가족들에 의하면 당시 경찰은 "영상 속 남성이 내연남일 거다.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시켜 돈을 인출한 거 아니겠냐"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처음부터 수사 의지가 없었던 경찰은 이미 강 씨가 외도로 인한 가출을 했다는 결정을 내린 상태였던 것이다.

가족들은 CCTV에 포착된 A 씨의 희미한 얼굴을 포스터 해 전단을 배부하며 그를 찾아 나섰지만 범인을 특정하는데 실패했다. 결국 경찰의 헛발질로 인해 사건 이후 며칠이라는 시간이 범죄 관련자와 연관이 높았을 A 씨에게 주어졌고, 이 시간 동안 가족들은 흐트러져 있던 집안 곳곳을 정리해 버려 현장에 있을 수도 있는 최소한의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도 전부 날려 버렸다.

(유력 용의자의 CCTV사진)
(유력 용의자의 CCTV사진)

◇ 실종 23일 만에 아들이 시신 발견…뒤늦은 수사 시작

실종 23일째인 28일에 빌라 건물에 원인 모를 악취가 나고 집 앞 복도에 구더기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아들 송 군은 건물 내부의 냄새가 나온 곳을 찾아 나섰다. 옥상 계단으로 갈수록 강한 악취가 풍겨왔지만 옥상까지 올라가자 악취는 나지 않았다.

옥상에서 나는 냄새는 아니었던 것이다. 원인은 물탱크실이었다. 송 군이 옥상 계단 옆 물탱크실 문을 열자 그곳에선 벽과 물탱크 사이에 껴 있는 형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한 엄마 강 씨의 시신이 웅크린 채 있었다.

그제야 경찰의 수사는 시작됐다. 하지만 시신은 무더운 날씨로 인해 상당히 부패가 진행이 된 상태로 정확한 사망원인을 파악할 수 없었다. 부랴부랴 단순 가출이 아닌 살인 사건으로 수사를 전환한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했다. 조사 끝에 사망 추정 시각은 5일 오후 3시 30분~5시 사이로 밝혀졌지만 사인은 끝내 '불명'으로 나왔다.

또 당시 강 씨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평소 즐겨하던 동호회 채팅창에 "아들 도시락 준비하러 간다"는 말이었다. 이는 단순 가출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경찰이 이 채팅 내역을 조금이라도 빨리 확보했더라면 가출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겠지만, 결국 안일한 대응으로 23일이라는 시간이 허비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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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심증만으로…남편을 범인으로 몰아

하지만 이때부터 경찰은 유력한 용의선상에 강 씨의 남편을 올려놓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근거로 '현관문을 열려는 등의 강제 침입 흔적이 없었고', '범인은 사망한 강 씨가 순순히 문을 열어줄 정도의 아는 사람의 소행'이라고 추정했기 때문이다.

또 방음에 취약했던 다세대주택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비명이나 다투는 등 수상한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진술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경찰은 강 씨를 죽인 범인을 전혀 경계하지 않을만한 인물에 무게를 두고 용의자가 남편이라고 사실상 단정 지었다.

경찰은 은행에서 돈을 인출한 A 씨는 사망한 강 씨의 남편과 공범이라며 시신이 다세대주택에 있던 물탱크에서 발견된 됐다는 점 등이 남편이 범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당시 경찰은 '외부에서 남편이 공범과 아내를 살인한 후 사건 며칠 뒤 시신을 물탱크로 옮겨놓은 것'이라는 허술하고 비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남편은 교통사고로 인해 왼팔이 없었고 다리에도 운동장애가 있었다. 1급 장애인인 강 씨의 남편은 스스로 거동조차 힘든 상태였다. 그럼에도 경찰은 초동수사부터 강 씨의 남편을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는 비상식적인 판단을 저지르고 만다. 이후 강 씨의 남편은 범행 추정 시간에 동료들과 있었다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입증되며 다행히 혐의를 풀 수 있었다.

◇ 경찰은 끝까지 유가족에게 변명 일관…재수사 움직임도 흐지부지

물증 하나 없이 심증만으로, 끝까지 헛발질로 모든 사건을 말아 먹은 경찰은 잘못된 수사 속에서도 끝까지 유가족에게 사과는커녕 잘못 자체도 인정하지 않으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 과정에서 범인이라는 꼬리표를 달며 살게 됐던 강 씨의 남편과 그의 가족들은 2차, 3차 가해를 당하며 사건 당시의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건 발생 9년 만인 2011년 강 씨의 딸은 재수사를 요청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후 경찰과 검찰에서 재수사 움직임이 있었으나 지금은 흐지부지된 상태다.

결국 어느 평범한 한 가정의 주부이자 엄마였던 여성은 누구의 보상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서서히 잊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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