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공유하기

문학도는 화가 되어, 그림으로 詩를 그렸다…'무언의 영역'展

김기린 작고 후 첫 개인전…단색화가 중 유일하게 전통 회화 재료 사용
"나의 최종 목적은 언제나 詩였다"…갤러리현대서 7월 14일까지

[편집자주]

김기린 《무언의 영역》_전시 전경 이미지 (스케일). Courtesy of Kim Guiline Estate and Gallery Hyundai. 갤러리 현대 제공
김기린 《무언의 영역》_전시 전경 이미지 (스케일). Courtesy of Kim Guiline Estate and Gallery Hyundai. 갤러리 현대 제공

갤러리현대는 한국 단색화의 선구자인 김기린(1936~2021)의 개인전 '무언의 영역'(Undeclared Fields)을 오는 7월 14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현대가 개최하는 김 화백의 세 번째 개인전이자, 작고 이후 처음 여는 개인전이다.

단색적인 회화 언어가 구축된 시기인 1970년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연작부터, 1980년대부터 2021년 작고할 때까지 지속한 '안과 밖' 연작 중 대표적인 캔버스 유화 작업과 더불어 생전에 공개된 적 없는 종이 유화 작업까지 40여 점의 작품과 그가 직접 창작한 시, 아카이빙 자료가 한자리에서 소개된다.

김기린은 원래 문학도였다. 한국외대 불문과를 졸업한 그는 생텍쥐페리에 관한 연구를 위해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렇게 프랑스에서 보낸 20대는 랭보나 말라르메 등의 시를 읽으며 시에 몰두했다.

미술에 접어든 건 그가 30대가 될 무렵이었다. 30대 초반 미술사를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창작 활동에 나선 그는 한국 화단의 화가들과는 결을 달리하며 단색화 작가 중 유일하게 전통적인 회화 재료인 '캔버스에 유채'를 사용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집약하는 핵심은 시각적이고, 청각적이며 촉각적인 지각 현상을 아우르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외부 세계에서부터 인식할 수 있도록 캔버스 화면 위에 물감을 매체로써 다뤘다는 점이다.

김기린은 회화야말로 인간의 감성을 가장 잘 전달하는 예술 장르라고 생각했다. 1950년에 고향인 함경남도 고원을 떠난 그는, 다시 가보지 못한 고향에 대한 향수를 품은 채 살았다.

그는 문창호지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 달빛 밝은 밤, 어슴푸레 투명한 어둠이 눈에 선하다고 생전 자주 언급했다. 그에게 문창호지를 통한 경험은 밝음과 어둠을 지각하게 하는,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빛으로 체험하는 규정되지 않은 영역이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청년 김기린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 내면의 세계와 파리에서 경험한 다양한 장르의 문화적 자극을 캔버스 위에 텍스트가 아닌 물감의 양감으로 표현해 냈다.

김기린은 회화의 표면을 일종의 살아 숨 쉬는 온도와 습도와 빛의 파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피부라 설명한다. 음악이 추상 언어를 통해 본질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음악적인 맥락을 지향하는 지점도 있다.

평론가 사이먼 몰리는 그의 회화를 텍스트 없이 색으로 써진 시라는 새로운 맥락으로 해석하길 제안한다.

그리고 김기린 자신은 2018년 이렇게 말했다.

"나의 최종 목적은 언제나 시(詩)였다. 나는 계속해서 시 작업을 했으나, 글이 아닌 그림을 통해서였다. 항상 시적인 이미지를 추구한다. 내 정신은 한국적이고, 내 작품은 항상 나의 정신을 반영한다. 시인은 가장 정확한 단어들만을 사용해 본질을 구현해야 한다는 의식을 그림의 매체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오고 있다."
연관 키워드
로딩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