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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견인한 '지상 최대의 작전' [역사&오늘]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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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작전. (출처: US Coast Guard, photo 26-G-2517, 흑백사진(1944),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노르망디 상륙작전. (출처: US Coast Guard, photo 26-G-2517, 흑백사진(1944),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감행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이 독일 점령하에 있던 프랑스 북서부 해안에 상륙한 대규모 군사 작전이다. 

1943년 연합군은 독일 점령하에 있던 유럽 대륙에 대한 본격적인 공격 계획을 수립했다. 이탈리아 반도 공격과 더불어, 프랑스 북서부 해안에 대한 상륙작전이 계획됐고, '오버로드 작전'이라는 암호명이 붙었다.

장고 끝에 몇 군데 후보 지역 중 노르망디가 최종 상륙지로 결정됐다. 연합군은 독일 측이 침투 지역을 칼레로 오판하도록 기만작전도 펼쳤다. 80km의 노르망디 해안은 절벽인 데다가 방어진지가 견고했다. 독일군 수뇌부는 방심했고, 심지어 해안 방어의 책임자인 에르빈 롬멜 원수는 휴가를 떠났다.

마침내 6일이 상륙작전 감행일(D-day)로 결정됐다. 계속되는 악천후가 잠깐 멈추는 날이었다. 연합군은 육해공군을 모두 망라한 15만의 병력을 투입했다. 간밤의 짙은 해무로 인해 독일군은 기습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새벽에 포 공격이 시작되자 혼비백산했다. 독일 지휘부는 우왕좌왕했고, 히틀러가 취침 중이라 보고는 지연됐다.

상륙은 5개 지역(유타, 오마하, 골드, 유노, 소드)에서 감행됐다. 상륙 초기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많은 병사가 사망했다. 특히 오마하는 훗날 '피의 오마하'라고 불릴 정도로 피해가 극심했다. 하지만 연합군은 점차 해변 진지를 확보하며 교두보를 구축했다. 다음 몇 주 동안 연합군은 치열한 전투를 통해 독일군 방어선을 돌파하며 점차적으로 진격했다. 7월에는 중요 도시인 캉을 함락했고, 8월에는 브레타뉴 반도를 점령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 작전을 통해 연합군은 프랑스로 진격하는 교두보를 확보했고, 이후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을 몰아냈다. 이 작전은 수많은 병사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루어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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